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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환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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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환희

Talsoo 2019. 3. 17. 19:51


* 실낙원 / 000 네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내 손 끝에 닿았다. 감촉이 내 육체에 전달될 때, 나는 한 순간 의심했다. 이게 정말로 내가 만든 것인가? 이것이 정녕 내가 창조한 것이 맞단 말인가? 그러나 의심은 무의미하다. 지금 탄생한 이 존재, 이 개념이야말로 진실이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내가 만든 것을 마주 보았다. 아직 그는 나보다 먼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나보다도 먼저 눈을 뜨고 제 사명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흥. 하찮군. 결국은 내 손으로 자아낸 완벽조차 내 계산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괜히 감정이 흔들린다. 부글부글 끓는 듯한, 이 요동치는 감정. 이걸 무엇이라 표현해 볼까. 나는 아무래도 분한 것 같다. 내가 만든 완벽조차도 나는 만족할 수 없다. 나의 완벽은 어디에 있나. 나는 어떻게 하더라도 신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일까. 신이란 무엇인가. 나를 만든 존재는 누구인가. 이것은 오갈 길 없는 감정의 파도이다. 나를 잔혹한 영원 속에서 완벽을 갈구하도록 만든 존재에 대한.


 "……."


 그 때였다. 그가 눈을 떴다.


 "……."


그의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나와 같은 청회색 눈동자다.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그는 무표정인 채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눈을 깜빡일 줄도 모르던 그는 내가 하는 양을 보다가 저도 눈을 깜빡인다. 새로 태어난 존재는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는 내 주변에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흡수한 듯 생기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그에게는 생기가 있었다. 내가 끊임없이 추구하고 나서야 겨우 얻을 수 있던 그것이 그에게는 처음부터 있었다.


 "루."


 그가 가장 처음으로 뱉은 '언어'는.


 "루시, 퍼."


 놀랍게도 내 이름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 광경에 몰아치는 감정 때문에, 나는 어떠한 행위도 취할 수 없이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보았다. 나를 보고 내 이름을 불렀다.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이는, '완벽'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에 충실하게, 이미 내 이름조차 완벽하게 알아 버린 것이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 감정의 이름은 틀림없이 환희다. 나는 기뻐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손으로. 내가 스스로 '완벽'을 창조한 것이다. 


 "루시퍼."

 "그래."


 그 감정의 이름을 알고서야 나는 비로소 대답할 수 있었다.


 "그게 내 이름이다."

 "루시퍼."


 아이처럼 그는 내 이름을 반복해 불렀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이 조금씩 이해된다. '부모'가 된 자들이 '자식'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호칭하는 단어를 불리었을 때의 기분. 아. 또 다시 나는 알아가고 있다. 이 감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무엇이 이 환희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내 몸을 해부할 수 없다는 게 나는 가장 아쉬웠다.


 "나는 뭐라고 부르는가?"


 그 다음에 그는 말했다. 아. 나는 그 때가 되어서야 그의 이름을 제대로 짓지 않았음을 상기했다.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는 차분히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았다. 그를 보고 지어 줄 이름이라. 신기하게도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루시펠."


 이번에는 그의 대답이 없었다. 그는 잠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그런 것까지도 안 걸까. 너에게 내 모든 것을 부었기 때문일까?


 "루시펠, 인가. 내 이름은."

 "그래."


 그 이후로 그는 내게 끊임없이 물었다.


 "내 역할은 뭐지?"

 "너의 역할은, '진화'를 관장하는 것이다."

 "진화?"

 "더 나아진다는 거다. 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이기도 하지."

 "신."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존재다."

 "창조? 네가 나를 만든 것처럼?"


 그는 묻고 나는 대답한다. 그렇게 그는 배운다. 이런 행위를 반복하면 그는 나의 질문에도 대답해 주겠지. 그의 생각으로, '나'와 같은 결론을 낼 수 있겠지.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이윽고 웃었다.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그는,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었다. 그가 움직이는 순간 나는 알았다. 나는 완벽을 창조하는 데에 성공한 것을. 


 신이여. 보이는가. 이것이 나의 답이다. 내가 추구하는 진화다.


 "그래. 네가 만들어진 것처럼, 이 세계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한다. 꽤 재미없는 이야기지."


 자조를 하니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영 풀리지 않는 얼굴을 하고 스스로 고민하던 그는 갑자기 내게 물었다.


 "루시퍼. 신에 의해 창조된 게 우리라면, 우리는 왜 진화를 추구하지?"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단시간 만에, 나를 본따 만든 나의 피조물은 내가 갖고 있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나와 그는 의견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뜻이 맞는 존재에 대해 우리가 부르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신에게 닿기 위함이다."

 "신에게 닿는다고?"

 "그래. 나는 신에게 닿을 거야. 그리고 신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왜 나는, 우리는 만들어졌는지."

 "묻는 것인가."


 루시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남겨 놓은 완벽, 완전이 찬란하게만 느껴졌다. 이윽고 완성했다. 

 그래. 나는 너와 함께 진화를 추구할 것이다. 그런 우리의 사이는 틀림없이.


 "그래. 그러니 너도 함께 묻도록 하자. 나의 '친우' 루시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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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펠을 만든 루시퍼의 심정을 간단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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