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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마키] 아무 것도 아닌 복수 - 下 본문

S.Kiseki

[유시+마키] 아무 것도 아닌 복수 - 下

Talsoo 2015. 2. 3. 19:18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제국의 황제 대리로 나선 길리아스 오스본 재상의 중대 발표로 그것은 시작되었다. '신분제'를 없애겠다. 그 발표는 제국에 있어 일대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된다! 인정할 수 없다! 반대하는 이들이 거리에 나왔다. 대부분은 신분제의 폐지로 인해 누리고 있던 혜택을 잃어버릴 사람들, 즉 귀족들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발표를 철회하지 않았다. 오스본 재상이 버티고 서 있는 이상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다. 


 물론 그 여파는 상당히 심하였다. 평민들 중에서도 적응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발표는 철회되지 않았고, 이로서 명목상 제국에서 신분은 사라지게 되었다. 귀족회는 말리지 않고 뭘 한 것인가? 라는 책임론이 귀족들 사이에서 오고 갔다. 그러나 귀족회 자체도 그것을 어찌 막을 힘은 없었다. 재상 및 혁신파의 지속적인 견제로 이미 세력이 줄어들 대로 줄어들어, 4대명문이라고 통칭되는 귀족들조차도 발언력이 상당히 내려가 있었고, 얼마 전에 군권을 뒤에 업은 평민회의 다수결 의결로 영방군도 잃어버린 지라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미 이름뿐인 작위밖에 남지 않았던 이들은 고스란히 그들의 재산과 권력을 정부 측에 전부 넘겨야만 했다.


 어쨌든 드디어 귀족들의 특권을 빼앗은 혁신파 및 평민회는 다음 단계로 진입하였다. 작위가 낮은 귀족들부터 차분히, 그들의 자산을 국고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반대는 컸다. 그러나 그들을 막을 이는 없었다. 그것은 크로이첸 주를 통괄하는 '4대 명문' 알바레아 가에도 당연히 해당하는 것이었다. 신분제가 사라진 그 날 귀족으로서 통탄과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을 남겼던 귀족회의 대표, 유시스 알바레아는 항의하는 귀족들을 두고서 자가에 은신을 택하였다. 그 이후로 알바레아 가 저택 앞에는 귀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그에게 손을 뻗는 이들이 다수 몰려 있었다. 그러나 알바레아 가에서는 아직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행동에 대해 다른 이들은 아직 4대 명문은 권리를 빼앗기지 않아서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어, 그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생기는 와중이었다.


 그 알바레아 저택 앞에 마키아스는 서 있었다. 손에는 황제의 인장이 찍힌 문서를 들고서. 그가 저택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알바레아의 저택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로 쏠린다. 마키아스는 그들을 흘끔 돌아보았다. 마주치는 시선들에는 하나같이 두려움과 경멸이 뒤섞여있다. 마키아스는 그들을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허상같은 이들이다.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는.


 마키아스는 저택 현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본래라면 집사나 메이드가 나와 맞았겠지만, 신분제가 없는 지금 현실에 그런 것들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마키아스는 거침없이 걸었다. 빈 저택에 그의 구둣발 소리가 따닥따닥 울렸다. 


 "손님이 왔나 했더니."


 익숙한 응접실 앞에 멈춰 선 마키아스는 열린 문 너머에 있는 이를 보았다. 여기서 보는 것이 얼마만이더라. '그 날'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마키아스는 웃었다. 


 "그다지 달갑잖은 표정인데. 얼굴 좀 펴."


 마키아스는 능청스럽게 주인 앞에 섰다. 유시스는 마키아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하러 온 것인지는 지금 시점에선 이미 뻔한 일이다. 유시스는 어이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단 한 번도 저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귀족회의 대표인 자신과 평민회의 의원인 그. 몇 번이고 마주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조차 그는 유시스에게 인사한 적이 없었다. 그랬다. '마치 없는 것처럼' 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을, 마키아스는 정말이지 잘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용건이나 빨리 끝내시지."


 오랜만에 듣는 친우의 목소리는 차갑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키아스는 웃었다.


 "소원대로."


 마키아스는 저가 들고 있던 서류를 보았다. 황제의 인장이 찍힌 그것의 봉투를 열어, 안에 있는 종이를 꺼냈다. 유시스는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종이를 꺼내는 마키아스의 손이 떨리는 것은 보지 못한 듯 보였다.


 "에레보니아 제국 황제 유겐트 라이제 아르노르가 유시스 알바레아 공작에게 전한다."


 마키아스는 그것을 읽었다. 그의 또랑한 목소리가 유시스에게 하나하나 박히고 있었다. 


 "신분제의 폐지를 선언함에 따라, 알바레아 공의 작위를 몰수하며 공이 그 동안 ‘귀족’으로서 가지고 있던 권리와 자산 등은 모두 제국 정부에 귀속된다. 공은 신분을 벗어나, 새롭게 태어난 제국의 신민으로서 황실 및 에레보니아 제국에 변함없는 충성을 독려하는 바이다."


 문서를 다 읽은 마키아스는 그것을 유시스에게 전하였다. 그것을 받아든 유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뒤로 말이 없는 유시스에게 마키아스는 말하였다.


 "축하해. 유시스."


 유시스의 눈썹이 씰룩였다. 


 "이걸 바라고서 재상의 개가 되었나?"


 낮은 목소리로 유시스는 물었다. 그 날 이후의 마키아스는 본래도 그랬지만 더더욱 적극적으로 재상의 편에 서, 귀족의 권익을 지키려던 유시스의 지속적인 방해가 되어 있었다. 유시스에게 직접 논쟁을 일으키려 한 것은 적었으나 은연중에 그를 다른 이들과 싸우게 만든 이가 그임을 모르는 바가 아닌 유시스였다. 그리고 결국 이런 결과가 오고야 말았다. 노려보는 유시스를 바라보며, 마키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저 뜻이 맞았을 뿐이야. 귀족은 없어져야 한다는."

 "……."


 마키아스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유시스에게는 이유 모를 두려움을 주었다. 그는 저렇게 웃는 마키아스를 본 적이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니라 선언한 그 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보지 않았다. 더 이상 빚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아주 조금 안주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유시스는 의아하였다. 너는 누구인가. 내가 알던 이가 맞던가. 유시스는 또 입술을 깨물었다. 작위를 빼앗긴 것은 예상한 바였다. 그러나 지금 요동치는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걱정 마. 나는 진심이야. 너를 옥죄고 있는 귀족이라는 신분의 굴레에서 해방된 걸 축하해주려는 것 뿐이다. 이제 넌 자유야."


 마키아스는 짝짝 박수를 쳤다. 그 목소리는 평소의 마키아스와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유시스는 더욱 알 수 없었다. 감정의 굴곡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유시스는 다시 그를 보았다. 여전히 얼굴엔 옅은 미소가 함께 있었다.


 "왜 그렇게 질린 얼굴이야. 안심해도 된다니까. 더 이상 의무에 목매고 있을 필요도 없어. 너와 너를 섬기던 영민들은 이제 다르지 않은 걸."


 무엇인지도 모를 감정에 안절부절 못하는 유시스를 보며 마키아스는 눈을 반짝였다.


 "그래. 너는 이제 아무 것도 아니야."


 아. 이제서야 유시스는 그가 조금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말을 끝낸 마키아스가 킬킬 웃었다. 의원의 모습을 하고서 웃는 그는 이미 저가 알던 마키아스 레그니츠와는 한참 멀어져 있었다. 유시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었던 감정이 갑자기 차오른다. 이상하다. 분명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어야 하는 것인데. 어째서인가.


 "이게 그 때의 나를 향한 복수라면, 너무 치졸하지 않나?"


 차오르는 감정을 누르던 유시스는 이를 악물며 결국 '그 일'을 꺼내고 말았다. 그렇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었기 이전의 마키아스는 신분제 폐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보인 태도가 달라졌다. 그러니 당연한 추측이었다. 그러나 마키아스는 유시스의 말에 핏 웃었다. 아까와는 분명하게 다른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명백한 비웃음이다. 유시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복수라니."


 마키아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왜 너에게 복수를 해야 하지?"


 쿵. 뭔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마키아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표정 없이 마키아스는 말을 이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게 주었던 것을 되찾으러 온 거야. 내가 복수 같은 거창한 관념을 가지고 너를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굉장한 자의식 과잉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 걸."


 마치 발의문을 읽듯 차분한 목소리였다.


 "호의를 받을 줄은 모르면서 자의식 과잉이라니 웃기지도 않네."


 피식 웃으며 마키아스는 안경을 슥 올렸다.


 "어쨌거나 축하해. 더 이상 귀족의 의무 같은 어울리지도 않는 무거운 짐은 지지 않아도 돼. 동등한 제국의 신민으로서, 어디 한 번 열심히 살아보라고."


 그러면서 마키아스는 과장된 인사를 한다. 유시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까 그를 보았을 때부터 계속 끓어오르던 감정이, 뒤돌아서는 마키아스의 등이 보이자 이윽고 폭발하고 만다. 


 "레그니츠!!!!!"


 그 날은 아무 것도 아닌 이에게, 처음으로 무언가를 강렬히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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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대로 썼습니다

그래서 이 모양이네요 부디 용서를....


웹의 장점이져 일단 싸지르고 보는 것 (넘)

소재는 장편감 소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