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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aissance : 분점

마음의 쓰레기통 본문

S.Kiseki

마음의 쓰레기통

Talsoo 2015. 2. 16. 02:31

마키아스->유시스->린의 혼파망 구도입니다.

한 번쯤은 건드리고 싶었던 구도라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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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면 안 될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접고 나면, 또 다른 마음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가지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접으면 또 다른 마음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돌고 도는 마음은 결국 어딘가에 머물지도 못한 채로 찌꺼기처럼 남아 거대한 하나의 인간을 좀먹게 된다. 찌꺼기는 이미 검게 물들어 있다. 아무리 그것을 떼어낸다 한들, 시꺼먼 마음의 얼룩은 계속 인간에게 남게 된다. 더럽혀진 인간은 다시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것을 빨아내려 해도, 잔해는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얼룩은 더욱 깊게 남게 된다.


 그렇게 한 인간에게 얼룩을 남길 정도로 좋아했던 사람이 둘 있었다.


 한 사람은 '계기'였다. 그가 스스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이였다. 그의 존재가 없었다면 바뀌지 않았던 것이 너무도 많았을 것이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소속된 이들을 골고루 이끌어 한 데에 모아주는 구심점 자체였다. 리더. 그야말로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또 한 사람은 '대척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존재. 그러나 그 존재가 있었기에 그는 달라졌다.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세상은 넓어졌다.


 '계기'는 문을 열어주었다면, '대척점'은 문 너머의 세상으로 그를 이끈 이였다. 그는 어느 누구도 버릴 수 없었다. 누굴 더 좋아하느냐의 대한 정도의 차이로도 비교할 수 없었다. 아예 그 두 사람은 경우가 달랐다. 기준이나 위치가 처음부터 같지 않은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두 사람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중 어느 누구도 그를 좋아해 주지 않았다.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하려 하였다.


 그러나.


 "유, 유시스?"

 "……."


 기억 속에 있는 어느 날의 풍경이다. 아주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난 날이었다. 이미 다들 성인의 반열에 오른 지라 필연적으로 술자리와 함께 하는 자리였다. 술이 들대로 들어, 몇몇 이들은 식당 테이블 위에 뻗어 있기도 했다. 그 역시도 제법 술이 들어가, 아픈 머리를 진정시키려 바깥 바람을 쐬러 나왔던 참이었다. 


 그렇다. 그 때 우연히도 본 풍경이다.


 키 큰 금발의 사내가 잔뜩 젖은 푸른 눈을 하고서 제 앞의 사내를 응시한다. 키 작은, 푸른 빛이 도는 흑발의 사내는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한 채 그 청자색 눈을 깜빡이고 있다. 그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금발의 사내는 '대척점'이고, 흑발의 사내는 '계기'이다. 두 사람 다 술이 들어간 지라 얼굴이 붉은데, 그 붉은 얼굴이 술에 의한 것인지 다른 것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금발의 사내는 흑발의 사내에게 말하였다.


 "오랫동안 말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면 차라리 끝까지 말하지 말지. 라는 생각이 목끝까지 차오른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임을. 


 "정말로 좋아한다. 린."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고백이다. 더군다나 서로가 취중이니 최악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솔직히 이것은 거절당할 수밖에 없는 고백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마음은 고마워, 유시스."


 누구보다 상냥히 웃는 흑발의 사내. 그러나 그 말이 차갑다는 것을 금발의 사내나 몰래 지켜보는 그나 모를 리 없다. 이미 그들은 서로를 상당히 많이 알아버렸다. 흑발의 사내가 생각보다 자신에게 상당히 자신이 없는 타입에다 이미 관계적인 부분에서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는 것도, 금발의 사내는 흑발의 사내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고 거기에 위안을 느낀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파국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던 게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어. 미안해."


 아무리 술에 취하더라도 그는 그였다. 금발의 사내는 곧바로 시무룩한 얼굴을 하며, 알았다는 말을 전한다. 그에게는 여태 보인 적 없는 얼굴로, 바람을 쐬겠다는 말과 함께 금발의 사내는 사라졌다. 그가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흑발의 사내, 린 슈바르처는 곧바로 제 너머에 있는 이에게 말한다. 당연히 그 모양을 지켜보고 있던 그를 의미한다.


 "바라는 대로, 거절했어."


 린은 그에게 미소지었다. 그는 비틀린 얼굴이었다.


 "바란 적 없어."

 "유시스를 좋아하잖아?"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런 동정을 받고자 좋아한 게 아니야."

 "하지만 내가 받아들인다면 그 나름대로 괴로울 거 아냐. 너도."

 "그 녀석이 행복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심, 받지 않길 바랐지?"


 린은 지친듯 말하였다. 그는 또 부정하지 않는다.


 "그 녀석을 받아들이면, 네가 행복하지 못하니까."

 "나까지 생각해준 거야? 역시 마키아스라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한다. 그러나 역시 기분은 좋지 않았다. 깊이 잠든 찌꺼기가 구르며 얼룩을 남기고 있었으니까.


 "유시스를 위해서라도 나는 받아들이면 안 됐어."


 린은 말하였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 그에게 보였다.


 "나는 그 녀석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내겐 너무 커."

 "네가 너를 너무 과소평가할 뿐이다."

 "아니야. 마음가짐의 문제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걸."


 린은 몸이 갑자기 뻐근했던 모양인지 기지개를 켰다. 어깨 근육을 몇 번 풀던 린은 그를 보았다. 안경 너머의 눈이 몹시도 엉망인 그를.


 "마키아스."

 "무리다."


 린이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그는 말을 끊었다. 그의 의도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나 대신 그 녀석을 잘 부탁해.' 같은 실없는 소리나 할 것이 뻔하였다.


 "네가 할 수 없는 걸 내게 바라지 마라."

 "내가 할 수 없으니 네가 할 수 있는 거야."

 "너밖에 못하는 거였다."


 그의 목소리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대척점'의 사랑을 양껏 받을 수 있는 존재. 그는 린이 부러웠으나, 그것이 '계기'인 그에게 있어 행복이 아닌 것 또한 알아 그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 탓하지도 못하는,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은 또 찌꺼기처럼 한 구석을 굴러다닐 뿐이다.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또 실없는 소리였다.


 "네가 아는 유시스가 그럴 리 없잖나. 내가 아는 유시스도 마찬가지고."


 그 말에 린은 결국 피식 웃는 정도로 말을 끊고 만다.


 "마키아스가 부러워."


 그러다 또 린은 한 마디를 더하였다.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한결같을 수 있다는 게."

 "……."

 "나는 지금도 그리워 죽겠는데. 그걸 참을 수 있는 네가 부러워. 존경스러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참는 것이 아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만큼 찌꺼기가 되어 지금도 이 안을 뒹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라는 인간 자체가 마음을 버리는 하나의 쓰레기통인 것처럼. 지금도 계속 찌꺼기는 생기고, 그것이 남기는 검은 얼룩은 점차 그라는 인간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러다 완전히 더러워지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어느 누구도, 그 또한 모르는 것이었다.


 "들어가자. 린."

 "그래."


 시간이 오래 되었음을 깨닫고, 그는 린과 함께 원래 이들이 있던 술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바깥에 남은 이를 부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분명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정도의 눈치도 없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를 찾는 이가 있다면 적당히 둘러대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이들은 걸음을 옮기었다.


 한 걸음마다 또 마음이 쌓인다. 그것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면, 또 그것은 찌꺼기로 남았다. 걸음마다 검은 것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가 조금씩 한계에 오고 있다는 걸 그는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안다 한들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그저 검게 변한 인간이 어떻게 변할 지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 정도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마음이, 마키아스 레그니츠라는 인간에게 버려진다.

 검은 쓰레기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