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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마키] 친구가 다르게 보이던 때 본문

S.Kiseki

[엘리마키] 친구가 다르게 보이던 때

Talsoo 2015. 2. 6. 01:55


유시스를 좋아하던 마키아스가, 우연찮게 새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사약 하나 잘못 먹어서 이렇게 망하네요...(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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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엇 크레이그의 일상은 마치 꿈결 같았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그토록 바라던 음악원에 진학하였다. 그로서 엘리엇은 그가 꿈꾸던 일상 속에 빠져들어갔다. 늘 들고 다니던 바이올린의 활을 바꾼 것이 벌써 몇 번째던가. 보이지 않는 음표를 늘 귀로 들으며 머릿속에 새긴다. 그리고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또 연주한다. 엘리엇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그렇게나 빠져 있으면 물릴 법도 하건만, 아직 엘리엇은 전혀 그런 것을 몰랐다. 흐르는 모든 것에 박자와 음이 더해져 이름 없는 악보가 되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찰나처럼 흘러간다. 엘리엇은 그저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제 머릿속의 수많은 음악 중 하나로 넣어두는 것이다.


 엘리엇이 넣어두는 수많은 음악들은 엘리엇의 안에 잠든 재능의 꽃을 피워 냈다. 당연하게도 엘리엇은 음악원의 학생 중에서도 톱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상당한 재능이라는 평은 듣고 있었으나, 전쟁이 끝난 이후로 피어난 그의 음악적 재능은 어느 교수든 혀를 내두를 정도의 것임은 분명하였다. 한 몇 십년만에 나타난 천재다. 놀랍다. 경이롭다. 엘리엇은 그도 모르는 새에 촉망받는 신인이 되어 있었다. 음악원의 과정은 긴 편이었지만, 그라면 조기 졸업도 가능할 정도였다. 물론 엘리엇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제가 연주하는 하나의 선율이 조금 더 아름답도록 빌 뿐이다.


 그런 그였지만, 수업은 역시나 그에게도 힘이 드는 일이었다. 마침내 끝난 수업의 강의실을 뒤로 한 채, 악기 가방을 들고서 바깥으로 걸어 나온 엘리엇은 대낮의 햇살이 내리쬐는 하늘을 보았다. 날씨 좋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악기 가방을 잠시 내린 엘리엇은 기지개를 쭉 폈다. 바이올린을 이고 있었기에 뻐근한 어깨 근육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꽉 뭉쳐 있던 어깨 근육이 아파왔다.


 "이런.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헤실헤실 웃던 엘리엇은 바닥에 잠시 내려두었던 가방을 다시 들었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도력 지팡이를 휘두르는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그 생각을 하던 엘리엇의 품 안에서 갑자기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어라. 엘리엇은 코트 안 주머니에 들어 있던 무언가를 꺼냈다. 붉은 바탕에 금빛으로 사자 모양이 새겨진 덮개로 덮인, 수첩 비슷한 그 물건에서 나는 소리였다. 엘리엇은 덮개를 열고 버튼을 눌렀다. 수첩의 모양을 한 도력 통신기. 엘리엇의 전 학교의 학생수첩이었지만, 기능이라던가 여러 이유에서 도저히 버릴 수는 없는 물건이었다.


 "여보세요."


 누가 전화를 걸었을까. 물론 이것에 전화를 걸어올 만한 사람의 범위는 상당히 축소된다. 적어도 이것에 전화를 걸어오는 이는 이것에 관련된 이들 뿐임을 엘리엇은 잘 알고 있었다.


 "아. 다행히 안 바쁠 때인 모양이군."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엘리엇은 바로 알아챘다. 그야 그럴 것이다. 음악원 안에 있는 엘리엇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제외하면 지금 엘리엇이 가장 자주 듣는 목소리이였기 때문에. 


 "응. 마키아스. 무슨 일이야?"


 통신 상대, 마키아스 레그니츠는 엘리엇의 대답에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그.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나?"

 "저녁? 아. 응. 오늘 수업 일찍 끝나서."

 "다행이군. 요즘 너나 나나 시간 맞추기가 힘이 드니."


 마키아스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러 보자 하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구나. 엘리엇은 그렇게 판단하였다.


 "그럼 엘리엇. 6시 쯤에 우리 학교 정문에서 볼 수 있을까?"

 

 잠시 망설이나 싶더니 마키아스가 말하였다.


 "으응. 괜찮지만. 기왕 만날 거면 그냥 우리 집에 오는 게 낫지 않아?"

 "피오나 씨가 계시지 않나."


 피오나 씨라고 함은 엘리엇의 누나인 피오나 크레이그의 이야기이다. 그의 분위기를 보아, 아무래도 피오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아닌 듯 보였다. 엘리엇은 잠시 생각했다. 보통이라면 이런 제안을 할 경우 거의 저녁을 혼자 먹는 마키아스는 거절하지 않지만, 굳이 마키아스가 피오나를 피해 엘리엇을 보려고 하는 경우 몇 가지 특정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엘리엇은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에 생각이 미쳤다.


 "흐응. 그래. 알았어. 그럼 거기서 봐."

 "고맙다. 그럼 있다가 보자."


 그 말을 남기고 마키아스의 통신은 끊어졌다. 엘리엇은 통신이 끊어진 도력 통신기, ARCUS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엇의 일생에 있어 음악이 거의 없는 순간이었음에도 잊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그 잊지 못할 때의 증거물이 바로 이 ARCUS였다. 같은 제도 출신임에도 거의 만나지 못하였던 마키아스를 만나게 한 것 역시 ARCUS와 이것을 엘리엇에게 준 학교, 토르즈 사관학교의 VII반이었다. 엘리엇이 음악원 친구들을 제외하고서 그를 가장 자주 만나는 것도 당연한 것이, 거기서 보낸 시간 동안 가졌던 특별한 인연들 중에서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이가 마키아스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있어야 할 곳에 흩어져 있어, 가끔 ARCUS로 안부를 전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 와중에 마키아스는 마침 같은 곳에 있다. 물론 정치 학교와 음악원의 스케쥴이 달라 의외로 자주 만나기는 힘들어도 같은 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음악에 빠져 지내는 엘리엇에게도 상당히 안정을 주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긴히 만나자고 하는 마키아스이다. 엘리엇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나 마키아스는 허투루 움직이는 적이 없는 이다. 그러니 분명 그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일 것이다. 물론 엘리엇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허투루 움직이는 일이 없는 것만큼이나 마키아스는 몹시도 알기 쉬운 인사였으니까.


 "나도 이제 슬슬, 지친다."


 남은 시간 동안 적당히 연습을 하다, 6시라는 시간에 맞춰 엘리엇은 마키아스를 만났다. 몹시도 익숙한, 짧은 청록색 머리의 남자가 엘리엇을 이끌고 간 곳은 저가 다니는 학교 근처의 주점이었다. 마키아스와 동기인 듯한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리는, 낡았지만 나름 분위기는 있는 주점의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 음료를 시키자마자 마키아스가 다짜고짜 꺼낸 말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엘리엇은 눈썹 끝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았다. 엘리엇은 한숨을 쉬며 그를 보았다. 어느덧 급사가 주문한 음료와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가져다 준 음식은 제법 맛있어 보이는 감자 튀김이다. 엘리엇이 집어 먹어보니 맛도 훌륭하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마키아스가 저를 여기에 부른 것 같지만, 정작 그를 부른 본인은 시름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서는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마키아스의 안경 너머의 시선이 흔들렸다. 갈 길을 모르는 채 흔들거리는 그의 시선이, 엘리엇에게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마키아스는 일생일대의 시련을 겪고 있었다. 여태껏 겪어본 적이 없는 종류의 감정에 휘말려서는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 


 "마키아스가 잘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

 "아니. 그렇다고밖에 생각이 들지가 않아."


 엘리엇이 말을 건네면, 마키아스는 고개를 젓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왠지 이번에도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마키아스에게 엘리엇은 살짝 미끼를 던졌다. 어차피 알 것 다 아는 사이이다. 숨길 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엘리엇의 생각대로 마키아스는 입을 열었다.


 "그 놈이 또 통신을 안 받아."

 "바레아하트가 요즘 좀 시끄럽잖아. 바쁜 것 뿐일 거야."


 역시나다. 엘리엇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 피오나를 만나서 하지 못할 이야기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마키아스의 통신을 안 받는 문제의 상대는 그들과 같이 토르즈 사관학교에서 1년을 함께 한 동료이자 마키아스의 대척점에 있는 이였다. 유시스 알바레아. 크로이첸 주를 총괄하는 알바레아 가의 공자로, 지금은 복잡한 사정 상 그의 본거지인 바레아하트에서 영주 대리 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최근 바레아하트에서 꽤나 큰 사건이 터져서, 분명 그것의 뒷수습을 하느라 바쁠 것이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마키아스의 통신을 받지 못하였던 모양인데, 그것이 지금 마키아스에게 굉장히 이상하게 작용하고 있는 듯 하였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마키아스는 그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알고 있다만."


 마키아스는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엘리엇 역시 얕게 심호흡을 하였다. 아마도 그 나름 걱정을 하는 것이리라. 처음 만났을 때 싸우기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마키아스가 유시스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보다야 훨씬 더 솔직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첫 단추가 문제였던 것인지 나름대로 마키아스에 대한 적의를 누그러뜨렸을 유시스도 솔직하게 굴지는 못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다만 마키아스가 답답해하는 부분은 분명 거기가 아닐 것이다. 걱정은 되고 전하고 싶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걱정이 되는 거지?"

 "……."


 대답 대신, 마키아스는 음료를 마신다. 모양새를 보아 맥주다. 술 시켜도 되는 건가? 기본적인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묻지 않기로 하는 엘리엇이었다. 답답한 속을 달래는 데 그것이 필요하다면 말린다 하여도 수가 없기도 하다.


 마키아스가 유시스를 좋아한다. 그 사실을 엘리엇이 알게 된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저녁이라도 먹자고 하여 만났던 이전의 어느 날, 유시스를 좋아한다는 걸 마키아스가 제 입에 담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엘리엇에게 그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그런 케이스를 본 적이 있기도 하였고, 마키아스가 유시스에게 갖는 감정이 특별하다는 것쯤이야 엘리엇을 포함한 당시의 친구들이라면 모를 리 없기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당시 엘리엇은 그렇게 그를 위로했던 것도 같다. 물론 VII반의 동료들에게는, 특히 유시스 본인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같이 들었다. 말할 생각은 없었다. 엘리엇이 아는 마키아스는 필요하다면 직접 말할 사람이다. 굳이 엘리엇이 나설 만한 것은 아닌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말하지 말아달라는 말처럼, 마키아스는 자신의 마음을 유시스에게 밝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것은 그 만큼의 관심이 가고, 신경이 쓰이도록 만드는 감정이다. 그가 어찌 유시스에게 신경을 쓰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마음을 유시스는 모른다. 그러니 마키아스가 그에게 쓰는 신경이 모두 동료의 나름 소중하나 번거로운 잔소리 수준에서 끝나고 만다.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닐 마키아스였지만, 그는 끝내 그것을 감내하려 하였다. 차라리 화끈하게 말하고 화려하게 차이는게 낫지 않겠나. 그런 이야기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러면 지금보다 더 어색해질 거다. 나는 그게 더 싫어."


 이런 말로 기각을 당했더랬다. 사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자업자득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괴로움을 참아내려고 평소엔 잘 마시지도 않았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제 친구를 보고 있자면, 엘리엇은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만다.


 "솔직히 바쁠 시기에, 되도 않게 걸려오는 전화가 귀찮을 거라는 정도는 나도 알아."


 맥주잔을 거의 비우고서 마키아스는 말하였다.


 "그러니 받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것을 뭐라 할 생각도 없어."

 "그래."


 엘리엇은 가만히 웃었다. 마키아스는 뿌얘진 안경 너머로 괴로운 눈을 하고 있다.


 "제일 한심한 건. 그걸 못 참고서 이러는 나다."

 "……."

 "털어놓을 곳이 너밖에 없다는 이유로, 네 귀한 시간을 빼앗아가면서 이러고 있는 나."


 마키아스에게는 정말 드문 자기 학대이다. 모르는 새에 상당히 한계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엘리엇은 내심 마키아스 쪽이 더 걱정되었다. 하기는 끌어안는 쪽이 고통 면에서는 더 문제이다. 특히나 숨기는 데에 서툰 마키아스라면. 제도와 바레아하트가 그래도 떨어져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지 모르겠다고 엘리엇은 생각하였다.


 "내가 너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엘리엇."

 "마키아스."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역시 포기하는 게 맞겠지?"


 마키아스는 식어 가는 감자 튀김을 하나 집어 입 안에 넣는다. 그것을 우물우물 씹는 마키아스의 얼굴은 전등을 등지고 있어 더욱 어두워 보였다.


 "그게 맞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대체 왜 안 되는 거야!"


 그러다 가슴 안에 뭉쳐져 있던 게 결국 흘러나오고 만다. 어느덧 마키아스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 아. 단조다. 플랫음이 마키아스의 몸에 잔뜩 뭉쳐져 있는 것이 엘리엇의 눈에 보였다. 이렇게까지 침체되는 단조는 어떻게 조율을 해야 하더라. 


 "어째야 될 지 모르겠어. 너무 머리가 아파. 고백하기엔 무섭고, 숨기기엔 힘겨워. 어쨌든 나는 그 녀석을 잃고 싶지 않고, 그 놈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 지금이야 안 만나고 있으니 괜찮지만, 마주치면 분명 숨기지도 못할 게 뻔해. 그래서 잊으려고 해도, 아주 가끔 통신 걸어서 유시스가 잘 있는 것 같으면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단 말이야. 그런데 이것조차 안 되는 거잖아. 가지고 있어봐야, 의미가 없는 거잖아."


 말하는 것만 보아도 마키아스는 상당히 혼란 속에 빠져 있다. 분명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되는 대로 말을 뱉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악기의 상태로 따지자면 너무 오래 묵혀두어, 제 음감을 잃어버린 상태와도 같다. 그럴 때엔 우선 음을 잡아둬야 한다. 엘리엇은 마키아스를 보았다.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의, 테이블 위에 놓인 손을 잡았다. 덜덜덜 떨리던 그의 차가운 손이 엘리엇의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감싸진다. 마키아스가 헉하고 숨을 내뱉었다. 


 "안 되지 않을 거야. 의미 없지 않아."


 엘리엇은 활짝 웃으며 그에게 말하였다.


 "마키아스가 누굴 좋아하든, 그 감정이 진짜라면 그건 의미 있는 거야. 그리고 마키아스가 갖고 있는 건 외롭고 힘든 게 맞잖아. 나한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니까. 그러면 나한테 털어놓는 것 정도는 괜찮아. 그 정도의 시간은 있는 걸. 그러니 여기서 널 만나고 있는 거고."


 당연히 이 말에 거짓은 없다. 애초에 이것은 진심을 부딪혀야 하는 싸움이다. 음을 조율하든 사람의 마음을 마주하든, 그 순간에 믿어야 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진심뿐이다.


 "그걸 견디지 못한다고 해서 마키아스가 자책할 필요는 없어. 괴롭고 힘든 걸. 좋아하는 데도 말하지 못한다는 건 힘든 일이야."


 마키아스의 눈물샘이 터지기라도 한 것일까. 멈추지 않는 그의 눈물이 엘리엇의 손등 위로 투둑 떨어졌다. 흐릿한 시선 너머의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반짝였다.


 "그래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멋진 일이야. 음악에서도 그렇거든. 누군가를 사랑해서 쓴 음악은 그 분위기부터 달라. 듣기만 해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사랑에 빠진 것처럼 말이야."


 엘리엇은 마키아스의 손을 꽉 잡았다. 차갑던 그의 손은 엘리엇의 체온에 덥혀져 제법 따뜻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엘리엇은 다시 웃었다.


 "그렇게 울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키아스는 정말로 멋진 것 같아."


 손은 놓지 않았다. 마키아스는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엘리엇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단하게 포기하려고 하지 마. 어쩌면 기회가 있을 지도 몰라. 유시스의 마음을 먼저 물어보지는 않았잖아?"

 "……."


 마키아스는 젖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얼굴이 아까보다 훨씬 빨갛다. 술 기운이라도 올라온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엘리엇이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기로 하였다. 다만 갑자기 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마키아스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울면서 마주하긴 싫은 거겠지. 분명.


 "고맙다. 엘리엇."


 엘리엇과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로 한참을 있던 마키아스는 어렵사리 그에게 말을 꺼냈다. 물론 시선은 여전히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리고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그래도 덕분에 많이 안정이 된 것 같다."


 마키아스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보인다. 겨우 돌아왔구나. 엘리엇은 안심이 되어, 저도 모르게 한숨을 크게 내뱉고 만다. 마키아스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겨우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마키아스는 엘리엇을 보며 난처한 듯 웃었다. 


 "처음엔 네게 들키도록 했던 걸 후회했었는데."


 잔에 남은 맥주를 마저 비우며 마키아스는 코맹맹이 소리로 말하였다.


 "너에게 알려진 게, 결과적으론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다행이네."


 역시 여유를 찾은 엘리엇이 웃으며 그의 말에 화답하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시시콜콜한 잡담과 일상 이야기 뿐이다. 엘리엇이 하는 이야기야 뻔할 정도로 한 길인 음악 이야기일 것이고, 마키아스가 할 이야기야 한결같은 제국 정세의 이야기일 것이다. 맞지 않다면 맞지 않을 이야기들을 스스럼 없이 맞춰 나가면 결국 그 시간 자체가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 되어, 헤어지는 순간까지 기억 속에 깊이 남게 된다. 그렇게 헤임달의 밤은 또 한 번 지나간다. 





 그리고 마키아스의 고백이 원래 가야 할 상대가 아닌 엘리엇에게 오는 것도, 그것을 엘리엇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조금 더 뒤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