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Renaissance : 분점

[유시+마키] 묘한 버릇 본문

S.Kiseki

[유시+마키] 묘한 버릇

Talsoo 2014. 12. 23. 19:23


유시스+마키아스.

 

원고를 위한 캐릭 해석 확립용으로 썼던 글입니다.

짧게 쓰려 했는데 끝이 안 나서 애를 좀 먹었던 기억.

 

 

-------------------------------------

 

 그 녀석은 가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본다. 내가 그 습관을 알게 된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물론 사람이 늘상 집중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멍하게 되는 것 정도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 녀석의 이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 건 이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는 초연한 눈을 하여도 안에는 이러저러한 생각을 담고 사는 인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쉽사리 멍해지지 않는 타입. 더군다나 남을 간단히 믿을 수 없는 인간인지라 주변에 대한 경계도 심한 편이다. 그와 알게 된 지 몇 년.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러니 더더욱 이상한 것이다. 

 

 내가 이 녀석의 버릇을 관찰하는 동안 깨달은 게 또 하나 있는데. 요 녀석, 내 앞에서만 이런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VII반이나 린에게도 저런 적은 없다. 그러니 나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왜 하필 나인가?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그것을 대놓고 물을 수 없기에 머리를 열심히 굴려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너 왜 내 앞에서만 멍 때리냐?'라고 묻기도 민망하다. 애초에 우리는 그런 걸 마음 놓고 물을 만한 사이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못 할 건 없지만 분명히 '그런 거나 보고 있었나?' 하며 바보 취급을 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나는 그걸 몇 년이 지나도록 그냥 넘어가지를 않기 때문에. 뭐, 그런 것이다.

 

 "뭔 생각을 하지, 레그니츠?"

 

 그러던 와중에 그만 내가 멍을 때리고 말았다. 너 때문이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다.

 

 "묻지도 못 하나?"

 "아니. 그럴 리가. 누구씨 덕에 좀 생각을 하느라고."

 

 누구 때문에 그런 것인데. 조금 열이 받아 되받아쳤다. 그러니 그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인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이 해서 내 말조차 듣지 못하였는지 모르겠군."

 "아. 예. 미안합니다. 경청 안 해줘서."

 

 짜증이 나 던진 말조차 그에게는 별반 소용이 없는 듯 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 뒤로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와 나 사이에 이것은 지극히 익숙한 일상과도 같았다. 마치 폭풍 같다. 한꺼번에 몰아친 뒤에 다시 조용해지는 것이. 

 

 "하지만 조금 궁금하군."

 

 전야와 같던 분위기는 그의 말 한 마디로 끝이 났다.

 

 "뭐가 말이냐."

 "네가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런 젠장. 안 듣고 있던 게 아니었나. 

 

 "아, 알아서 뭐 하시게."

 

 고작 이런 것 좀 들켰겠서니 목소리가 떨린다. 이런 마당이니 그가 모를 리가 없다.

 

 "나를 앞에 두고 하는 내 생각이라는 것이 뭔지 조금 흥미가 동했을 뿐이다. 뭐. 말하고 싶지 않다면 캘 생각은 없다만."

 

 설마하니 이렇게 나올 줄은. 내가 당황하던 사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그 시선 앞에는 내가 끓여다 준 홍차가 있다. 그는 거기에 한참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래. 내가 말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까 대체 왜! 내가 이렇게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의 시선은 거기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차분하게 내려온 그의 금발이 때마침 불던 작은 바람에 흐트러진다. 금발 너머의 푸른 시선이 일렁이는 홍차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유시스."

 

 결국 나는 그를 불렀다. 그는 퍼뜩 놀란 듯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불렀나?"

 "그래."

 

 그는 아무래도 자기가 멍하니 있었다는 사실조차 자각을 못한 모양이다. 이런 마당이니 물어봐도 대답은 못 해주려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이 했냐."

 

 그럼에도 일단 물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의외로 내 호기심도 풀어줄 지도 모르니.

 

 "누구씨 생각을 좀 했다."

 "하아?"

 

 아니. 이래서야 아까의 반복이잖아. 이러면 나도 그가 나에게 했던 마냥 묻지 말아야 하는 건가?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안 묻는 건가?"

 

 그러던 새에 그가 먼저 선수를 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지나칠 정도로 초연하다. 

 

 "아니. 아까 네가 그랬으니 나도 묻지 말아야 하나. 그 생각을 좀 했지."

 "쓸데없군."

 

 알거든요. 그러니 조용히 좀 해라. 머리에 열이 살짝 오르고 있었다.

 

 "궁금하면 물어보면 되는 것 아닌가. 너는 여태껏 그래 왔으니."

 "아아. 그래. 궁금해 뒈지겠다. 뭔 생각을 그리 했는데?"

 

 어떻게 된 것이 몇 년이 지나도 저 말투에는 하나하나 배알이 꼴린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말에 날이 서버렸다. 그걸 깨달은 뒤엔 항상 늦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 애초에 말투적인 면에서 먼저 선빵을 치는 건 그쪽이니까 내가 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이것 때문에 몇 년째 사이 진척이 안 된다고 VII반 멤버들에게는 가끔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홍차가 흔들리더군."

 

 그 말로 끝이었다. 나는 맥이 턱 빠지는 것 같았다.

 

 "그걸로 끝?"

 "끝이다. 뭐 더 바라는 게 있었나?"

 "아니. 내 생각을 했다며."

 "네가 끓인 홍차지 않나."

 

 금방이라도 빵 터지려는 속을 억지로 눌렀다. 고작 이딴 걸로 나를 가지고 놀았겠다. 눈 앞에 있는 상대에게 짜증이 확 밀려온다. 그것을 억지로 누르고 있던 나에게 그는 인내심을 친히 끊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말하였다.

 

 "설마. 이 내가 너를 생각하느라 멍하니 있었다. 이런 전개를 기대했던 건가?"

 

그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 결국 나는 흥분을 누르지 못하였다.

 

 "그럴 리가 있냐!"

 "마치 그런 걸 바란 반응이다만."

 "아니거든! 누가 그래!"

 

 빌어먹을. 도대체가 이 놈은. 연신 씩씩거리면서도 나는 민망하였다. 어쩌면 한 쪽에선 그걸 바랐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마구잡이로 든 탓이었다. 아니. 하지만 그렇잖아. 그게 아니면 내 앞에서만 그러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그 동안 생각해본 결과 두 가지 정도로 축약이 가능하다. 나를 만만히 여기거나, 나를 편하게 여기거나. 어느 쪽도 사실 나에게는 그다지 편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그렇게나마 잠시 안정할 수 있는 상대가 나 뿐인 것은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나조차도 모를 그런 미묘하고 미적지근한 기분 말이다. 

 

다만 이런 모양새로 나와버리니 이제는 묻기조차 싫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흥분을 가라앉히던 와중에 그가 말하였다.

 

 "뭐, 확실히. 네 앞에서는 이상하게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

 

 그 말에 퍼뜩 놀라 나는 그를 보았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그게 네가 내 저택에 와줘서인지, 아니면 여기서 끓여주는 홍차 때문인지."

 

 이상한 느낌이다. 몹시 낯설다. 왜 답지 않게 이러는 거지. 아니면 독심술이라도 익혀서 지금 내가 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가? 

 

 "홍차를 보면서 그 생각을 했었다."

 

 초연한, 그러나 격렬한 감정을 품은 듯한 푸른 눈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 미묘함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이것 저것 생각을 하였을 머릿속이 마치 텅 빈 듯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나. 정신을 차려봐. 그렇게 외쳐도 공기를 타고 다시 되돌아올 뿐이다.

 

 "어. 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은근한 폭탄 발언을 던진 그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선을 홍차로 돌렸다. 이렇게 되면 난처해지는 건 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하는 건가. 이런 적은 우리의 세월 동안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만 하다.

 

 "왜 그리 멍청한 얼굴이지, 레그니츠."

 "누가 멍청하다는 거냐!"

 

 아니. 그만 두겠습니다. 수습이고 뭐고. 어쨌거나 호기심은 해결됐으니까. 적어도 이 녀석이 왜 나한테만 그렇게, 그 녀석의 말마따나 멍청한 얼굴을 하는 지는 알게 되었으니까. 지금은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건.

 

 내 앞에서 긴장을 풀 정도로 내가 만만하다는 거냐, 이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