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Renaissance : 분점

[유시마키유시] 트리스타의 눈 본문

S.Kiseki

[유시마키유시] 트리스타의 눈

Talsoo 2014. 12. 23. 19:24


유시마키유시. 

트위터 글모임봇 키워드였던 눈 내리는 밤 + 사랑일 수도 있어요

로 쓴 글입니다.


12월 1일쯤에 썼던 것.



-------------------------------------



 "아."


 트리스타 역을 나서기 무섭게 남자의 부츠 위로 눈이 떨어져 녹는다. 그는 하늘을 보았다. 해가 거의 져 가는 하늘을 짙은 회색빛 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그 우중충한 하늘에서 하얀 눈송들이 하나 하나 내려왔다. 불어오는 칼바람에 남자의 몸은 으슬으슬 떨리고 있었다. 어깨를 떨면서도 그는 있는 힘껏 발을 딛어, 막 쌓이기 시작한 눈 위를 밟아 제 발자국을 남겼다. 그의 밑창의 모양이 바닥에 선명히 새겨지는 와중에 남자의 시선은 어느새 하늘에서 그의 옆으로 줄줄이 심어진 나무들을 향해 있었다. 지금이 봄이었다면 화려한 라이노 꽃으로 만개하였을 나뭇가지는 원래 입어야 할 옷을 잃은 마냥 앙상하기만 하다. 잎 하나 존재하지 않는 그 모양새를 보며 남자는 지금이 겨울이긴 하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다시 납득을 하는 것이다. 남자는 숨을 내쉬었다. 그 입술 끝에 하얀 김이 서렸다. 


 "보자. 약속 장소가 어디였더라."


 몇 걸음 걷다 멈춰 선 남자는 제 품 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정갈한 필체로 약속 장소에 대해 쓰여 있는 그 메모를 남자는 찬찬히 읽었다. 오후 6시. 카페 키르히. 내용을 확인한 남자는 메모지를 다시 제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빨개진 제 손을 그가 입고 있던 코트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는다. 새하얀 입김이 서리는 그 앞에, 마찬가지로 새하얀 안개가 낀 트리스타의 정경이 보였다. 여기도 1년 만인가. 잠시 제 과거를 돌아보던 남자는 약속 장소를 향해 걸었다. 카페 키르히는 트리스타 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못 찾는 쪽이 바보일 정도였다. 거기다가 남자에게 트리스타는 지나칠 정도로 익숙한 장소였다. 그 길을 못 찾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시계를 보았다. 5시 50분. 적당한 시간이다. 늦지 않았음을 확인한 남자는 총총걸음으로 키르히를 향해 달렸다. 날이 너무 춥다. 그는 어서 따뜻한 곳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5분도 채 걷지 않았음에도, 남자는 키르히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실내의 열기가 확 그에게 밀려왔다. 삽시간에 남자가 쓴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린다. 남자는 안경을 벗고 흐릿한 시선으로 키르히의 안을 둘러보았다. 바깥 날씨가 추운 탓일까 카페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쩌면 거의 대부분의 트리스타 사람들이 이리로 몰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인파 속에서 남자는 저와 약속을 잡은 이를 열심히 찾고 있었지만, 시야가 흐릿한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은 여전히 김이 서린 상태였고, 안타깝게도 안경을 닦을 만한 천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아무리 해도 상대가 보이지 않아 한숨을 쉬고 있던 남자의 품 안에서 무언가 울렸다. 남자가 퍼뜩 놀라며 꺼낸 것은 도력 통신기, ARCUS였다. 


 "네. 마키아스 레그니츠입니다."


 통신을 걸어온 상대를 알 수 없어 일단 남자는 존대로 응수하였다. 물론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 통신을 걸어올 만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지만.


 "거기서 뭐 하는 거냐."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당히 고압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남자, 마키아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 씨가 숨어든 덕분에 좀 찾느라 말이다."


 어쩜 이리 변하지를 않나. 라고 내심 생각하며 마키아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 바로 뒷쪽과 통신기에서 동시에, 그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처음부터 네 뒤에 있었다만."


 그 말에 마키아스가 퍼뜩 놀라 뒤를 돌아보면, 그 자리에는 마키아스를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려보다보는 금발의 남자가 있었다. 마키아스와 오늘 약속을 잡은 그 상대, 그리고 마키아스의 지독한 악우(惡友)였다. 그의 푸른 눈이 마키아스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키아스는 어처구니가 없어 절로 혀를 찼다.


 "있었으면 아는 척을 좀 해라!"

 "바로 뒤에 있는 기척도 못 알아보는 게 문제 아닌가? 언제 알아보나 지켜보고 있다가 평생 못 찾을 것 같아 애써 연락해줬다만."

 "애초에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도 없잖아."


 어이가 없네, 정말. 그 말을 덧붙이며 마키아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시야가 안 보이는 탓에 추가로 긴장을 했던 것인지 힘이 탁 풀리는 순간 마키아스의 다리가 한 번 후들거렸다. 금발의 남자는 그것을 보며 핏 웃는 정도였다.


 "만났으니 된 것 아닌가. 일단 자리에 앉도록 하지. 레그니츠."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성큼성큼 한 테이블을 향해 걸었다. 마키아스는 서린 김이 모두 없어진 안경을 고쳐 쓰며 남자의 뒤를 헐레벌떡 따라갔다. 테이블 앞에 앉은 남자는 곧 급사를 불렀다. 활달한 여급사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오랜만이네. 유시스. 잘 지냈어?"

 "적당히 잘 지내고 있다. 오늘의 스페셜 메뉴 두 개로."


 저에게 아는 척 인사를 건네는 여급사에게 금발의 남자, 유시스는 아주 살짝 미소를 띄우며 주문을 했다. 주문을 받고 카운터를 향해 쫄래쫄래 달려가는 그녀를 두고 유시스는 시선을 다시 마키아스에게 돌렸다. 


 "밥 정도는 사도록 하지."

 "그거 참 고맙네."


 마키아스는 불만스러운 내를 감추지 않았다. 


 "내가 네 뒤에 서 있던게 그리 불만인가?"

 "그게 아니잖아. 멍청아. 어휴, 말을 말아야지."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무는 마키아스를 보며 유시스의 눈썹이 살짝 씰룩였다. 그것을 보지 못한 마키아스는 음식을 기다리며 본격적으로 화제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만나자 한 용건이 뭐야? 네가 날 부른다는 건 정말 드문 일이잖아?"


 그것도 여기 트리스타로 말이야. 그 말을 덧붙이며 마키아스는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유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키아스의 그 의문도 당연한 것이, 지금 유시스는 원래라면 바레아하트에 있어야 하는 몸이었다. VII반이 각기 헤어진 뒤에도 몇 번 정도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유시스는 그것 때문에 거의 참여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와중이니 마키아스는 굳이 이 시간에 바레아하트가 아닌 트리스타에서 원래라면 제도(帝都)에 있어야 할 저를 만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 유시스도 그런 상황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모양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린에게 부탁을 받았다."

 "린에게?"


 유시스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굉장히 의외였다. 물론 그 '린'이라면 지금 트리스타에 있을 테니 그가 불렀다고 하면 모든 상황이 설명이 되기는 한다. 


 "너에게 전할 물건이 있다며, 대신 나한테 전해달라고 하더군."

 "뭐?"


 마키아스는 반문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트리스타에서 제도가 더 가까운데. 나한테 전달할 물건이 있는데 직접 안 오고 굳이 바레아하트에 있는 너를 불러서 나에게 전해달라 했다고?"

 "나도 조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가 없는 부탁이었다."


 유시스가 무표정으로 대답하고 있는 새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오늘의 메뉴는 따끈한 스프와 크림 파스타였다. 단번에 올라오는 향긋한 냄새에 상당히 허기가 져 있었던 마키아스의 몸이 반응한다. 잘 먹겠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금 배가 고픈 것이 더 먼저인 마키아스였다. 덕분에 파스타를 흡입하고 있는 그를 보며 유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저도 한 입 먹었다. 잠시간 둘 사이에는 말 소리 대신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래서. 그게 뭔데?"


 접시 반 정도를 삽시간에 비운 마키아스가 마침내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천천히 파스타를 먹고 있던 유시스가 그를 향해 시선을 올렸다. 그러다 그의 얼굴을 보며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키아스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눈을 깜빡이며 유시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트리스타의 눈'을 마키아스에게 전해주도록 해. 마침 오늘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니까."

 "……."

 "이상. 린의 전언이다."


 그 말에 마키아스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였다. 그저 멍하니 저가 쥐고 있던 포크를 살짝 놓으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그니츠? 유시스가 그를 한 번 부르자 마키아스는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큭큭 웃었다. 


 "영문을 모르겠군."


 유시스가 그 앞에 한 마디를 던진다. 


 "린 녀석. 기억하고 있었구나."


 마키아스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참을 큭큭거리며 웃고 있었다. 유시스의 눈썹이 또 살짝 찌푸려졌다. 그렇게 웃던 마키아스가 이윽고 웃음을 멈추고 유시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작년에 여기서 눈을 봤잖아? 그걸 또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에 한 적이 있었거든."

 "아아. 그랬지."


 유시스와 마키아스는 같은 풍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 꿈에도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 전란의 시절. 마침내 우리의 학교를 되찾았던 그 때 내렸던 눈을. 


 "그걸 기억해줘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한 모양이다."

 "그렇군."

 "왜 하필 너랑 같이 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마키아스는 기쁨에 찬 듯 말하다가도 갑자기 게슴츠레한 눈으로 유시스를 바라본다. 그 반응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솔직하다. 


 "마침 내가 알고 싶은 것과도 비슷한 것 같군. 이 내가 고작 너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움직여야 했다니."

 "바쁜 몸 잡아 미안하게 됐네. 아직 기차 안 끊겼을 텐데 돌아가시던가. 아. 리무진이라도 있나?"

 "그럴 필요는 없다."


 의미없는 말다툼을 하고 있는 새, 어느새 파스타를 전부 다 먹은 유시스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트리스타에서 머물다 갈 생각이니까."

 "어라. 그래도 되는 거야? 바레아하트는 괜찮아?"


 돌아가라 할 때는 언제고, 그 말에 덜컥 놀라는 마키아스였다. 유시스는 핏 웃었다.


 "내가 고작 하루 없다고 돌아가지 못할 도시라면 내가 다스릴 만한 곳도 못 된다."

 "아. 그러십니까."


 잠시라도 걱정을 해준 것이 무색한 반응이라, 마키아스는 곧바로 차게 식은 반응을 내놓는다. 그 역시 진작 파스타를 다 먹은 뒤인지라 여급사가 재빨리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디저트로 나올 음료를 기다리며, 마키아스와 유시스는 어색한 듯 자연스러운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뭐. 나도 오늘은 트리스타에 머물 생각이었으니. 피차일반인가."

 "제도는 여기서 가깝지 않나?"

 "그렇기는 한데 기왕 온 김에 역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어서. 너도 그런 마음으로 왔던 거 아냐?"


 마키아스가 묻자, 유시스가 놀란 듯 마키아스를 보았다. 그 반응에 뭔가 문제 있는 말을 했던가 싶어 마키아스가 자기의 언행을 되돌아보는 사이에, 유시스는 피식 웃었다.


"흥. 그 말이 틀리진 않군."


 어느새 디저트 음료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유시스와 마키아스는 그 뒤 특별히 말을 하지 않고서 음료를 조용히 마셨다. 


 "역시 여기 음료 맛은 변하지 않는다니까. 커피였다면 좋았겠지만."

 "마찬가지다. 홍차였으면 더 좋았겠다만."


 그러다가 또 말이 부자연스럽게 끊기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음료잔도 비운 뒤였다. 유시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마키아스가 물었다.


 "잠시 바깥 바람을 쐬려고 한다. 린이 준 눈도 봐야 하지 않겠나."

 "날이 이렇게 추운데?"

 "나는 너와 달리 추위엔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유시스는 의자 위에 벗어두었던 제 코트를 다시 걸쳐입었다.


 "뭐. 너는 그냥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나로서도 나쁘지 않다. 시끄러운 놈을 굳이 붙일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러면서도 그는 마키아스를 향한 도발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그의 다음 반응도 빤하니까.


 "하. 난들 추위에 신경 쓰는 줄 아냐? 성 안에서만 박혀 있었을 도련님 걱정을 좀 해줬을 뿐이라고." 


 분명 이런 식으로 저와 동행할 것을 유시스는 알고 있었다. 


 "흥. 따라오는 건 상관 없다만 길이나 잃지 마라. 그럼 나는 식사 계산을 하고 오도록 하지."

 "길을 잃어도 여기서 잃겠냐!"


 계산을 위해 카운터로 걸어가는 유시스의 등을 향해 마키아스는 듣지 않을 한 마디를 뱉어냈다.





 키르히를 나서니 아까보다 바람은 좀 잦아들어 생각만치 춥지는 않았다. 유시스와 마키아스는 제법 눈이 쌓인 트리스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중앙의 공원을 지나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면 칠요교회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학교. 들어간다 한들 그들이 아는 이들은 거의 학교에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그들을 여기로 불러들였던 린 역시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 트리스타를 떠났다고 하였으니 더더욱. 들어가도 의미가 없다 판단을 하였던 것인지, 그들은 학교 정문 근처를 잠시 멤돌았다.


 "별로 변하지를 않았네. 토르즈 사관학교."


 그러다 마키아스가 제 감상을 꺼냈다.


 "우리가 떠난 지 채 1년이 안 되었다. 벌써부터 변한다면 그것이 더 문제 아니겠나."

 "하긴. 그도 그렇네."


 마키아스는 살짝 웃었다. 그 웃음 소리를 따라 하얀 입김이 생겼다 사라진다. 유시스는 그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키아스의 빨간 볼이 보였다. 


 "뭘 그리 보고 있어, 유시스. 얼굴에 뭐 묻었나?"

 "딱히. 그저 멍청한 얼굴에 조금 더 신경이 갔을 뿐이다."

 "멍청하긴 누가 멍청하다는 거냐.... 아니 됐다. 말을 말아야지."


 일일이 대응하기도 지친 모양인지 마키아스는 한숨을 쉬더니 다시 그 시선을 사관학교를 향해 돌렸다. 사자 문장의 깃발이 바람 소리에 펄럭였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립고도 묘한 느낌이라, 마키아스는 결국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돌리고 만다. 그 앞에 유시스의 얼굴이 있었다. 


 "괴롭나?"


 그는 그 한 마디를 건넸다.


 "아니."

 "어차피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아니라니까."


 그 목소리에는 조금 물기가 서려 있었다. 여기서 지냈던 1년간. 그 그리움이 복받치듯 밀려오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키아스 역시 모르지 않았다. 아무리 지금의 트리스타를 보아도 그 때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잠시, 찬란했을 그 추억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 뿐이었다.


 "돌아갈 수 없다면 나아갈 수밖에."


 아마도 유시스 역시 같은 심정이라,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다시 또 새기는 것이다. 마키아스는 유시스의 눈을 보았다. 아주 조금, 물기가 서려 있었다. 마키아스는 난감한 웃음을 띄며, 그의 등에 제 등을 맞대었다. 서로를 보지 말자. 지금은. 나름 그런 의미의 배려였다. 


 "제길. 너무 감상적이 됐잖아. 그것도 하필 네 앞에서." 

 "동감이다."

 "오지 말 걸."


 괜스레 마키아스의 팔이 떨렸다. 추위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그 떨리는 마키아스의 팔을 유시스가 꽉 붙잡았다. 어라. 웬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잡힌 그 부분이 살짝 따뜻하여 아주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럼에도 그의 팔을 잡고 있는 유시스의 손 역시 떨리고 있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마키아스는 왠지 확 뒤를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곧 그만두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아주 조금 아쉬움을 느끼며, 마키아스는 가만히 선 채로 유시스의 등에 기대었다. 


 "어이, 유시스."

 "뭐냐."

 

 잠시 상념에 빠져 있다 마키아스는 유시스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가자."

 "흥."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거부의 의미는 아니었다. 슬슬 몸도 추워지고 있고 이미 눈은 볼 만큼 본 것 같았으니까. 펑펑 내리는 트리스타의 눈을 새로 밟으며, 유시스와 마키아스는 다시 키르히로 돌아가기 위해 나아갔다. 토르즈 사관학교를 뒤로 한다. 마치 그 때와 같이. 


 "유시스."


 그러다 마키아스는 또 그를 불렀다.


 "뭐냐."

 "불러줘서 고맙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유시스는 마키아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마키아스는 저를 외면하는 유시스를 그대로 바라보며 말하였다.


 "아무리 린의 부탁이었다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는 부탁이었잖아?"

 "린에게는 빚을 졌으니 갚을 수 있다면 최대한 갚으려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해 줬잖아?"

 "빚을 갚기 위함이라 했다. 쓸데 없는 감사는 필요 없으니 넣어두도록."


 그런 것 치고는 시선을 못 마주치는게 영 수상쩍다고 생각한 마키아스였지만, 지금은 두기로 했다. 그저, 지금 내리는 이 눈을 계속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때까지 옆에 있는 이 오만불손한 녀석이 함께 해준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잠깐, 왜 이 녀석과 같이 있어야 하는 거지?'


 그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마키아스의 위로, 새하얀 눈이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


'S.Kisek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시+마키] Sadly ever after - 上  (0) 2015.01.03
[유시+마키] 제도(帝都)의 제야(除夜)  (0) 2014.12.31
<백일몽+Fade Out> 통합후기  (0) 2014.12.29
[유시+마키] 연(緣)  (0) 2014.12.23
[유시+마키] 묘한 버릇  (0) 201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