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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se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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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soo 2015. 1. 4. 00:10


가위님 생일 기념으로 드렸던 글. 마키아스->유시스.

뭔가 드려야지 해놓고 까먹고 있었던 것을 나중에 떠올리는 바람에 마치 전력 60분을 달린 듯한 느낌으로 급하게 썼던 것.

원랜 안 올리려 했지만... 이미 알티되고 관글 찍혀있길래.......


유시스를 좋아해서 혼담이 내심 안 내켰던 마키아스와 그걸 전혀 알 리 없는 유시스를 쓰려고 했었는데 과연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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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담이 오고 간다는 말을 들었다."


 바레아하트의 알바레아 저택을 방문한 손님은, 현재 저택의 주인인 공작 대리가 그를 맞이하기 무섭게 말을 꺼낸다. 공작 대리, 유시스 알바레아는 그의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찌푸린다. 너도 오자마자 그 이야기인가. 유시스는 저택을 방문한 손님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너마저 그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니, 어지간히 충격적인 소식인 모양이로군."

 "당연하지."

 "내 신분을 생각하면, 오히려 꽤 소문이 늦게 도는 편이지 않나. 레그니츠."


 레그니츠라 불린 손님은 제가 쓴 안경을 살짝 올린다. 그런 그를 보며 유시스는 "일단 앉지."라는 말을 전하며 그를 응접실의 테이블 앞으로 안내하였다. 손님, 마키아스 레그니츠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를 따라온 뒤, 테이블 앞에 있던 소파에 털썩 앉았다. 유시스는 곁에 있던 집사에게 차를 부탁하였다. 집사가 물러나자 그 역시 마키아스 옆의 소파에 앉았다. 그 일련의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정말로 할 거냐. 결혼."


 유시스가 앉자마자 마키아스는 기다렸다는 듯 묻는다. 그의 하는 양을 보니, 대답을 듣기 전까지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유시스는 한숨을 쉬었다.


 "모른다."

 "몰라? 왜?"


 마키아스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그 때 집사가 차 두 잔을 가지고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차 두잔이 조심스럽게 올라왔다. 마키아스는 집사를 향해 인사하였다. 그리고 그가 물러나자 홍차 한 입을 머금었다. 유시스 역시 찻잔을 들어 차 향을 음미하였다. 오늘의 차향은 조금 묵직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혼담이라는 것을 그리 간단히 결정할 수 있다 보나."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유시스의 대답에 마키아스는 당황한 듯 말 끝을 흐렸다.


 "하지만 생각 정도는 있을 거 아니냐.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정도는."

 "그렇겠지."

 "남 이야기 하듯 하지 말라고. 너한테 묻는 거다. 유시스."


 유시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마키아스는 그것이 답답한 모양인지 한숨을 크게 쉰다. 그의 숨결 끝으로 홍차가 흔들린다.


 "그걸 알아서 네가 뭘 어쩌겠단 거지."


 유시스는 대답하였다. 마키아스는 멍청해보이는 얼굴을 하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무언가 생각하는 모양인지, 그의 입에서 바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유시스는 그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도 그렇네."


 마키아스는 옅게 웃었다. 유시스는 그의 반응이 의외였다. 보통이라면 자신이 제 친구인데 고작 그 정도의 의리도 없냐는 둥 쪼기라도 할 것일 터. 나름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있던 유시스였으나 마키아스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였다. 그것이 몹시도 이상하다. 유시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조금 목이 타는 것도 같다.


 "그렇지. 잠시 잊고 있었다. 어차피 내가 그걸 안들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

 "왜 그렇게 이상한 얼굴이야. 유시스."


 바라보던 유시스의 시선을 마주하며, 마키아스는 실없이 웃었다. 이상한 건 너다만. 그 말이 목끝까지 차오르려다 말았다. 아무리 보아도 오늘의 마키아스는 이상하다. 유시스는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오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에는 당연히 이 건으로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부터 그는 자신의 일도 바쁜 주제에 이상할 정도로 유시스의 일에는 관심이 많아서, 이렇게나 중대한 건에 대한 소문이 제도까지 들릴 정도가 되면 거의 항상 도력 열차를 타고 이리로 건너오고는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그 건으로 와서 예사 잔소리 몇 마디 하고 돌아가겠거니.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레그니츠."


 하지만 묘하게 시무룩한 그 얼굴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는 어찌 되었든 친구였다. 정확히는 악우에 가까웠지만.


 "왜."

 "너. 대체 뭐하러 온 거냐."


 의문이 있는 이상 피하지 않는다. 특히나 그의 앞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유시스는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뭐하러 오기는. 뭔 생각인지 모르는 놈 생각을 알러 왔지."


 마키아스는 툴툴거리며 대답하였다.


 "그래서, 알아냈나?"


 유시스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그 생각을 알러 온 사람이 누구인지야 뻔한 것이다. 


 "아니."

 "그럼 왜 알려 하질 않지?"

 "알려주려 하지 않으니까."


 마키아스는 대답하였다. 고작 그것으로 끝인가. 유시스는 더더욱 의문이 들었다. 적어도 그가 알던 마키아스는,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여 입을 다무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속을 긁어가면서 제 마음속을 뜯어내려고 하였을 인간이다. 


 "네가 알려주지 않는다 하여 그 뜻을 몰랐던가?"


 그 말에 마키아스가 유시스를 노려본다. 순간적으로 쏘아대는 그 눈빛에 잠시 안심한 유시스였으나, 곧 마키아스는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푹 쉰다. 그렇게 나와버리니 어이가 없는 것은 유시스 쪽이었다. 여기까지 와놓고 이러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의미가 없다 생각하였을 뿐이다."


 마키아스는 시선을 돌린 채 대답하였다.


 "네 말마따나 내가 알아봐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알려주지 않을 거면 이대로 좋다고 생각했다."

 "벌써 포기 선언이냐."


 유시스가 비꼬듯 말하였다.


 "포기? 뭘 모르는군."


 그 말에 마키아스가 핏 웃는다. 유시스는 부아가 치밀었다. 마키아스의 반응이 그에게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도대체가 뭘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평소랑 분위기가 무언가 다른 것은 알겠는데 그 뒤를 알 수가 없다. 이유도, 해결 방법도, 무엇도. 유시스는 눈썹을 또 찌푸린다. 


 "다르게 말을 해야 되나. 알고 싶지 않은 거다."


 마키아스는 쓸쓸해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네 결혼 상대나, 네가 결혼할 건지 어떤 건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레그니츠."

 "돌아가지. 차는 잘 마셨다."


 그렇게 말하고서 마키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유시스는 그의 손목을 확 붙잡았다. 잡고 나서 아차 싶었지만 이미 상황은 종결된 뒤이다. 유시스는 그의 손목을 놓지 않았고, 마키아스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유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시스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일단 붙잡기는 하였으나 도대체 무슨 명목으로 붙잡은 것인지를 그에게 어찌 설명할 지가 문제였다. 아니, 애초에 본인조차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유시스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그를 붙잡은 것은 어떠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 마키아스는 자신의 혼담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하였다. 하지만 유시스에게는 반드시,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 뿐이다.


 "알고 싶지 않은가. 레그니츠."


 그래서 유시스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 혼담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다 했잖아."


 마키아스는 거절의 표시를 하였다. 유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알려 하지 않겠다 하였지."

 "......"

 "혼인할 생각은 없다. 마음이 없는 결혼은 상대나 나나 불행해질 뿐이다."


 마키아스의 눈썹이 씰룩였다. 그의 표정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슬픔. 착잡함.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얼굴. 유시스는 그의 반응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계속, 그럴 생각이냐."


 마키아스는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유시스는 대답하였다.


 "가문은 어쩌고."

 "형님이 있지 않나."

 "이미 들어온 혼담은."

 "거절하면 그만이다."


 왜인가. 질문을 거듭할수록 마키아스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처럼 들렸다. 유시스는 곧 저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마키아스의 손목을 놓았다. 뼈밖에 잡히지 않던 그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나 참."


 마키아스는 그렇게 말하며 소파 위에 털썩 앉았다. 유시스는 그를 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그러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마키아스의 얼굴에는 지친 빛이 역력하다. 저 멍청할 정도로 고지식한 머리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고 간 것인지 유시스는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유시스가 모르는 무언가 있는 모양인데 그가 이야기를 안 해주니 알 턱이 없다. 물어볼까 싶다가도 요령없는 제 악우가 저렇게 머리를 굴려가면서까지 저한테 숨기려는 것이라면 캐려 하여도 쉬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무엇인지도 짐작을 할 수 없으니 유도신문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닌 얼굴이 아니다만. 아무래도 거울이 필요한 모양이군."


 그 말에 마키아스가 유시스를 노려보았다.


 "오늘따라 집요하네."

 "어느 손님이 굉장히 이상해서, 본의 아니게 무례를 범한 모양이로군."

 "정말이지. 한 마디도 안 지려고 하냐."


 마키아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별 일은 아니다. 그저 내가 포기하려 한 걸 네가 붙잡았다는 것만 알아라."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뱉어내는 마키아스였지만, 유시스의 머릿속은 더더욱 오리무중이었다. 뭘 포기하려 하고 자신이 뭘 붙잡았다는 것인가.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저렇게 선심 쓰듯 뱉어놓은 것을 보니 더 물어봐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고, 그러니 남은 것은 짐작 뿐이다. 하지만 그 짐작조차 전혀 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유시스의 문제였다. 알고 보면 단순한 인간인 주제에, 가끔 이상할 정도로 마키아스는 그에게 혼란을 주는 인사였다. 그런 유시스의 마음은 아무래도 좋은 듯, 마키아스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유시스도 붙잡을 만한 명분은 생각나지 않았다.


 "알려줘서 고맙다. 먼저 가지. 배웅은 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배웅은 해야 하지 않겠나. 라고 물을 새도 없이 마키아스는 재빠르게 응접실을 나가버렸다. 나가는 길은 아마도 알고 있겠지. 나름 혼자 있어야 할 시간이 필요했던 지도 모른다. 유시스는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정도의 커다란 동기를 얻지 못하였다. 대신 그는 제 손을 이마에 대었다. 후끈거리는 열을 느끼면서, 오늘의 이상한 마키아스에 대해 잠시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답이 나오지는 않아, 유시스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분명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지금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유시스는 창문 너머로, 저택 대문을 향해 혼자 뛰어가는 마키아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