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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마키] Sadly ever after - 上 본문

S.Kiseki

[유시+마키] Sadly ever after - 上

Talsoo 2015. 1. 3. 01:44


*) <Fade Out>과 <백일몽>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를 읽지 않으셨으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백일몽>과 <Fade Out>을 공개했습니다.

아래 이야기를 읽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일몽: https://kasagg.tistory.com/28




 1


 그는 어둠 속에 있었다. 빛 한 점 존재치 않는 새카만 어둠 속은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의미가 없다. 공간도 무의미하다. 존재 역시 그렇다. 이 어둠 속에 있자면 마치 처음부터 이 어둠의 구성 중 하나였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라는 인간은 언젠가 '존재'하였다고. 그것이 언제인지는 모르더라도. 그러나 그 존재하였다는 것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이 어둠 속에서 하나의 존재로 살아갈 수 없었다.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불완전한 기억으로는 어둠을 이길 수 없었다. 아. 언제쯤 사라질까. 숨이 막힐 듯한 어둠 속에 그는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그에게서 어둠은 사라졌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분명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이었는데 어느덧 장소라고 특정지을 수 있는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몸을 움직였다. 존재하고 있었다. 살아 있었다. 그 감각을 느낌과 동시에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또한 어떠한 존재인지를 떠올렸다. 방금 전까지 어둠에 있었던 것이 꿈인 것처럼 그는 모든 것을 되찾았다. 그, 마키아스 레그니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되돌아온 '기억'이 바라본 이 장소는 굉장히 익숙한 곳이었다. 은은히 나는 커피 향과 낡은 듯, 그러나 장인의 품격은 남아 있는 가구들. 마키아스에게 있어 익숙하다 못해 그리운 풍경이었다. 그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곳은 그의 집이었다.


 '얼마 만에 돌아온 거더라.'


 날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집 안 곳곳에 있는 월동 준비의 흔적들이 지금이 겨울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키아스가 기억하는 마지막 시간에서 상당수의 시간이 흐른 듯 하였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마키아스는 살짝 중얼거리고는 제 앞에 놓인 테이블을 보았다. 이상하네. 그는 한 번 중얼거렸다. 테이블 위에는 그가 보지 못한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다. 누군가 새로 사 놓은 것일까. 어라. 이상했다.  그, 마키아스 레그니츠는 죽은 이였다. 그리고 그의 슬하에 자식 같은 건 없었고, 이 집에는 그 혼자 살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죽은 뒤로 이 집에는 월동 준비는 커녕 일종의 관리조차 되어 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자신이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새로 살게 되었다는 가정은 가능하였다. 그러나 그런 것 치고는 집안의 구조가 모두 마키아스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관리만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사는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마키아스에게 짐작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10월 30일에 죽었다. 연설을 하던 도중 군부로의 회귀를 바라던 테러리스트의 총탄에 저격당해서. 그가 '존재'하고 난 뒤에 깨달은 사실이다. 그런 그이 이제 와서 눈을 떴다는 게 사실 그 때 죽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결말이라면 몹시 좋을 것이다. 하지만 마키아스는 자신이 이미 죽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제 몸을 돌아보았다. 그의 몸은 어린 시절, 자신이 토르즈 사관학교의 학생이던 때의 모습이었다. 그가 죽은 것은 이로부터 못해도 20년은 지난 뒤인데 학생 시절 몸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마 지금 그의 상태는 무언가의 정령 상태, 혹은 영혼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렇게 되면 다음 수수께끼는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가였다. 그 이유만큼은 지금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건 전부 다 알고 있었건만. 마키아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 때 바스락하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키아스는 깜짝 놀라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히 사람의 그림자였다. 누군가가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마키아스는 몹시 놀라 있었다.


 "유시스."


 유시스라 불린 이는 마키아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그를 지나쳐 옆에 있던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지친 듯 한숨을 크게 쉬고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보아, 마키아스의 집에 살던 이는 그인 모양이다. 한숨을 쉬던 유시스는 부엌 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찬장에 있는 커피 포트를 꺼내 물을 끓였다. 그 동작에는 일절 군더더기가 없다. 마키아스는 그가 하는 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 물이 끓고, 그는 찬장을 다시 열어 그가 마시는 듯한 홍차잎을 꺼내 잔 안에 넣었다. 그리고 찻잔을 가지고 갔다. 유시스는 조금의 시간이 지나 붉은 빛으로 우러난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왜 네가 여기에 있어?"


 아예 자신이 보이지 않으니 제 말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마키아스는 그에게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마키아스는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의 존재 의의도 확실하게 알 수가 없는 와중에 왜 그가 제 집에서 살고 있는가라는 추가 의문도 생겼기 때문이리라. 이제 막 다시 존재하기 시작한 마키아스에게는 온갖 것이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이렇게 된 이상 하나씩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금 생긴 하나의 궁금증 정도는 곧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마키아스였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그를 따라다니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일단 그렇게 해보기로 하였다.


 


 2


 그가 존재하게 된 것도 며칠이 지났다. 그 동안 사태 파악을 위해 용을 쓴 덕분에 마키아스는 현재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첫째로 그는 죽은 것이 맞았다. 지금 시점은 이미 10월 30일이 지난 이후였고, 테러리스트에 대한 상황 정리는 이미 이전에 끝이 나 있었다. 그리고 유시스 알바레아는 다행히도 무사히 재상 직을 이어받아 일을 하고 있었다. 마키아스에게는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바라는 대로 모두 이루어진 셈이니까. 물론 그것을 알아내는 와중에 유시스의 곁에 '렉터'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안다고 하여도 그가 막을 요량은 없었다. 애초에 그와의 계약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까지였다. 그러니 그에는 유시스의 곁에 있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두번째. 마키아스는 유시스의 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유는 아직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존재 허용범위는 유시스를 중심으로 약 20에이쥬 이내였다. 그 이상으로 벗어나려고 하면 무언가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참 신기한 제한이네. 그것을 시험해 보던 당시 마키아스는 생각했었다. 20에이쥬라는 거리도 거리이지만, 거리를 재는 중심축이 유시스라는 점이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마치 유시스를 지켜보기라도 하라는 듯한 제한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마키아스가 지금 존재하는 것은 유시스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 그가 존재하게 된 곳이 유시스가 살고 있던 그의 집이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그는 유시스를 따라다니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상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것 자체에는 의문이 없었으나 역시 그 다음이 문제였다. '왜' 그는 유시스를 지켜보아야 하는가? 어둠 속에 있던 자신을 이 세계로 끄집어낸 것이 단순히 제 친우를 지켜보라는 한가한 이유일 리는 없다. 애초에 마키아스는 그를 지켜볼 필요가 없었다. 유시스 알바레아는 마키아스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였다. 굳이 마키아스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그는 마키아스가 준 것을 아주 훌륭히 해낼 것이다. 여신도 그걸 알 것이다. 그런 이상 그는 단순히 유시스의 감시역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 게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마키아스는 알지 못하였다. 지금은 알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지켜볼 수밖에. 마키아스는 저만치 앞서 가는 유시스를 따라 쫄래쫄래 걸었다.


 유시스의 하루는 복잡한 듯 단순하였다. 오스트 지구에 있는 마키아스의 집에서 눈을 뜨는 그는 간단한 토스트로 아침을 떼우고는 도력 트램에 올라타 발프레임 궁의 재상 집무실까지 걷는다. 그리고 재상 집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정기적인 사무 보고 및 회의 등도 진행한다. 마치 마키아스가 했던 양과 비슷하였다. 그 모습에 마키아스는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리 자신이 전에 재상이었다 해도 그와 자신은 달랐다. 하는 양이 완벽하게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마치 저를 떠올리는 그의 생활방식에는 의문이 들었다. 더군다나 항상 그의 곁에 있던 집사나 메이드들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불편하지 않나? 마키아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색하게 유시스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다. 정말이지, 겉으로만 본다면 재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인간이다. 하지만 역시 이상했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무엇때문에 자신의 집에 머물며 자신과 비슷한 생활을 한단 말인가. 마키아스는 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유시스가 일을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지겨워, 마키아스는 갈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에게서 멀어지는 최대 거리는 집무실로 따지면 집무실 문 앞까지이다. 마키아스는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여기에 서 있노라면 바깥에서 나는 소리들이 은근하게 들려온다.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마키아스의 일상 중 하나였다. 어차피 자신의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문이 갑자기 열리더라도 상관이 없다. 그러니 상황이 어떠한 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그 문 앞에 가만히 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는 온갖 이야기들이 마키아스의 귀로 들어왔다. 


 - 재상 집무실이네. 

 - 그러고보면 유시스 님. 예전보다 좀 달라진 느낌이지?

 - 쉿. 이젠 재상 각하시잖아.

 - 아차. 그랬지. 아무튼, 알바레아 공이던 시절이랑 좀 달라지신 것 같아. 어디선 칼 같다고도 하고. 아무튼 좀 무서워지셨어.

 - 무서우셨던 건 예전에도 마찬가지잖아.

 - 그거랑은 좀 다르지. 약간 그... 몰아가는 거 있잖아. 그거.

 - 그런가... 아차. 들리겠다. 소리 줄여.


 이미 들리고 있다. 마키아스는 생각하였다. 늘 이런 식이었다. 그에 대한 온갖 소문들이나, 제국 정세의 일부 같은 것은 들린다. 그렇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마키아스는 어느 정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애초에 제 앞에 있는, 지금도 열심히 업무 중인 남자에게 묻는다면 빠르겠지만 그에게 말을 걸 수는 없는 상황이니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물어본다 하여 대답해 줄 이도 아니다. 마키아스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영 수확이 시원찮다. 애초에 칼 같다는 소문 같은 건 마키아스 자신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걸 들어봐야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마키아스는 고개를 돌렸다. 마키아스의 시선 너머의 이는 일을 마친 모양인지 기지개를 키고 있었다. 그러더니 유시스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책장의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곱게 접힌 종이였다. 마키아스는 그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종이였다. 유시스는 그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그 안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소신의 목숨이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부디 저의 후임은 유시스 알바레아 경에게 맡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키아스 레그니츠."


 마키아스는 그 종이의 내용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에서 계속 시선을 떼지 못하는 유시스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키아스는 그의 등 너머에서 자신의 날려 쓴 글씨를 바라보았다. 종이는 살짝 누렇게 되었으나 필체고 내용이고 변하지 않았다. 유시스는 그 변하지 않은 것에서 시선을 계속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살짝 물기가 서려 있었다.


 "유시스."


 대답이 돌아올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키아스는 그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표정이나 행동.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모를 리 없는 마키아스였다. 그리움의 표현이다. 자신에게 남은 그 사람의 흔적을 둘러보며, 이미 존재치 않는 사람을 그리는 행동이다. 그 종이는 사실 황제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표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유시스가 그것을 계속, 마키아스가 처음 그 종이를 보관했던 자리에 두고 있는 이유를 생각하였다. 그러니 다른 것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생활 패턴이 완벽하게 자신과 똑같은 이유. 그가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는 이유. 그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소문이 돌고 있는 이유.


 유시스 알바레아는 죽은 그 대신, 마키아스 레그니츠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가."


 왜 그러는 거야. 너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 말이 목끝까지 차오르다 들어갔다. 가슴 안에서 울분이 차올랐다. 그는 그저 자신의 뒤를 이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삶을 대신 산다니. 마키아스는 바라지도 않던 것이었다. 그렇다 하여 유시스가 남겨진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는 양은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다. 그랬기에 더더욱 마키아스의 삶을 그가 대신 살아줘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만 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전부 그의 것이다. 마키아스가 포기한 모든 것은 그가 가지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왜.


 그 때, 기침 소리가 들렸다. 유시스의 소리였다. 괴로운 듯 목을 붙잡으며 기침하던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어이. 괜찮은 거냐?!"


 유시스가 하는 양을 보자마자 그에게 달려간 마키아스는 흠칫 놀랐다. 그의 시선은 집무실 바닥에 떨어진 붉은 방울들을 향해 있었다. 그 붉은 것은 기침하던 유시스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마키아스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 핏방울을 보는 순간 마키아스의 머리에 강력한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피를 토한다는 것은 무엇이든 상당히 심각한 병이 그의 안에 있다는 것이다. 설마. 그 직감은 마키아스에게 굉장히 싫은 예감이 되었다. 유시스 알바레아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안 돼."


 그렇게 말하는 마키아스의 말을 뒤로 한 채, 기침을 멈춘 유시스는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가 토해낸 것들을 가만히 보더니, 제 품 안에 있던 손수건으로 바닥에 뿌려진 것과 제 손에 묻은 것을 모두 닦아내었다. 그리고 유시스는 뭔가 찾아낸 듯 손을 뻗었다. 마키아스의 유언이 적힌 종이였다. 그는 그것을 이리 저리 둘러보더니 안심한 듯 웃음을 짓고는 그것을 다시 원래 있던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유시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빈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빠르게 써내려갔다. 


 "근위병. 있나?"


 유시스는 소리를 내어 바깥에 있을 근위병을 불렀다. 바깥에 있던 근위병이 곧 집무실의 문을 열고 유시스의 앞으로 걸어왔다. 유시스는 그에게, 방금 저가 쓴 종이를 건네어 주었다.


 "부탁하지. 급한 전보다. 바레아하트의 알바레아 저택으로."

 "알겠습니다."


 근위병이 목례를 하고 물러난다. 그가 집무실을 벗어나 문을 닫는 것까지 확인한 유시스는 긴장을 푼 모양인지 의자 위에 스르륵 늘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키아스 쪽을 바라보았다. 유시스는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마키아스는 몸을 움찔했다. 설마하니 자신이 보이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무래도 보인다고 착각하였던 모양이다.

 

 "레그니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키아스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그의 시선은 마키아스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곧, 보러 갈 듯 하군."


 아니야. 아니야. 안 돼. 하지만 그런 바람은 마키아스의 목소리가 되지 못하였다. 그 때 마침 마키아스의 머릿속에, 마치 처음부터 예정되어있던 것처럼 어떠한 기억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은 그의 사명이었다. 마키아스 레그니츠가 '지금에 와서야' 다시 존재하게 된 이유.


 "그럴 수는 없어. 그럴 수는."


 부정하려 하여도 그 기억은 떨쳐낼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것은 제 삶을 다하지 않고 남에게 떠맡겨버린 마키아스 자신에 대한 벌일 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여도 이것만큼은 원하지 않았다. 그랬건만 운명은 그에게도 가혹한 것이었다.


 "내가. 내가 유시스를...."


 마키아스가 존재하는 이유는 유시스 알바레아의 죽음을 지켜보기 위해.

 그리고 그 죽음을 이끌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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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에 쓰려다 시간과 분량의 여유로 결국은 쓰지 못한 부분을 다시 정리해서 씁니다.

쓰다가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왈칵) 상, 하로 일단 나누었습니다.


사실 위에 적은 두 이야기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쓰도록 노력은 중인데...

어째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망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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